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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한 바퀴 돌기-무카체보의 팔라녹 성 (Palanok Castle)
작성자 : 관리자(admin@web2002.co.kr)  작성일 : 20.05.19   조회수 : 865

 

키예프에서 무카체보까지는 소형 승용차로 약 9-10시간 정도 소요되는 긴 여정이다. 우리는 좀 더 여러 곳을 돌아보기 위하여 남쪽 길을 택하였다. 도로 상태는 예상은 했지만, 정말 험하고, 어떤 곳은 강 앞에서 다리가 없어져, 미끄럽고 푹푹 빠지는 진흙밭을 따라 한참을 달려야 할 때도 있었다. 왜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러시아 원정에서 패했는지를 체험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넓은 평원에 강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몇 년간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청각적으로도 너무 조용해서 진짜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하였다. 약간은 느리게 돌아가는 마차 바퀴 소리와 비슷하다.

 

 

이런 대 자연적 아름다움? 평범함? 포옹? 대서사시? 무의미함? 공허? 앞에서 세상사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다. 가끔 접속되는 통신을 통해 코로나로 트럼프가 미국 국경 봉쇄를 곧 할 거라는 뉴스를 듣는다. 잘못되면 집에 못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급하질 않다.


 

 

슬로바키아 국경에 가까워짐에 따라 많은 스키장과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모텔이 보였다. 산길은 갈수록 더 험해지고, 차량 통행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저무는 날에 운전하기에 진땀이 났다. 그래도 트러커들이 승용차에 많은 양보와 배려를 해주어서 안심이 된다.


 

밤이 되어 도착한 무카체보, 주변을 흐르는 큰 강 때문인가, 습기가 압도한다. 서울의 70년대 변두리 시내 갔었다. 내비게이션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길은 나타나다 없어지기를 반복하고, 여러 번의 통화 끝에 가까스로 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내 중심에 있는 Star Hotel은 규모는 크지만 오래되고 낡은 구소련 시절의 건물이었다. 코로나로 리셉션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화를 한다. 호텔 부설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직원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서빙을 해주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손님이 거의 없다.

 

 

 

 

 

 

 

팔라녹 성은 군사적 요새답게 이 도시 가장 높은 언덕에 있었다, 해자를 건너 성문에 들어가면, 아치형 입구를 통과해서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화 나 영화에 나올 듯한 풍경이 그 앞에서부터 펼쳐졌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언덕 아래가 한눈에 보였다.

 

 

성에 대하여;

 

Mukachevo 성은 우크라이나의 귀중한 군사적 건축 기념물이다. 성은 Poddunaysky 땅에서 Kievan Rus, Semigradiye의 소금 광산에서 체코 공화국, 모라바 및 폴란드로 이어진 고대 무역 및 군사 노선의 교차로에 세워졌다.

 

 

정확한 건설 날짜는 알려지지 않지만, 목적은 무역로를 보호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작은 요새화된 정착촌이 세워졌고 그후 슬라브 부족 지도자들의 다양한 목조 성으로 대체되었으며, 9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키예프 요새의 국경을 지키기 위해 여러 형태의 요새 성곽들이 건설되었다.

 

 

 

성 증축과 재건은 뽀딜스키 왕자 Podolsky Prince Fyodor Koryatovich의 통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Mukachevo (1396-1414)는 몇 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작은 성을 강력한 요새로 바꾸어 그의 영지로 만들었다.


 

성은 Predzamcha와 안뜰로 구성되어 있으며 광장에는 주거용 타워 (donjon)가 있었다. 모든 집과 별채는 물이 없는 해자와 4개의 둥근 탑이 있는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중 3개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피 도르 코 랴토 비치 (Fyodor Koryatovich)의 죽음 이후, 이 성의 주인은 계속해서 뀌었다.

 

1633년 이 성은 트란실바니아 왕자 Dierd I Rakoczi가 구입했습니다. 두 명의 프랑스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옛 성의 재건이 시작되었고 Rakoczi 왕조 78년 동안 많은 개선이 추가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장소에서 다양한 건축양식 복합물을 볼 수 있다.

 

 

 

두꺼운 참나무 통나무의 높은 방어벽은 Palanok이라 불려 성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세기마다 높이가 68미터인 언덕에 18세기 초까지 다양한 건물이 건설되고 개선되어 4개의 별도 방어선이 형성되었다.

 

 

수 세기 동안 성은 수많은 정복자에게 포위되었지만, 그들 중 몇 명만이 그것을 함락할 수 있었다.

1711 , 페 렌츠 2세 라 코치가 패배하자 성은 다시 오스트리아 황제의 재무부에 들어갔다. 18 세기에 이 성은 군사적 의미를 잃어버렸으며 1789년 정치범 수용소로 바뀌었다.

 

 

1848 5 2, 반란군은 성을 점령하고 죄수들을 해방했다. 1897 년에 교도소가 폐지되고 성은 오랫동안 버려졌다. 1922-1926년에 부분적으로 개조되어 군사 막사로 사용되었다.

 

 

구소련 시대에 Mukachevo 성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날, 팔라녹 성은 우크라이나 Zakarpattia 지역의 주요 명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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